혹 / 문정희
자궁 혹 떼어낸 게 엊그제인데
이번엔 유방을 째자고 한다
누구는 이 나이 되면 권위도 생긴다는데
내겐 웬 혹만 생기는 것일까
혹시 젊은 날 옆집 소년에게
몰래 품은 연정이 자라 혹이 된 것일까
가끔 아내 있는 남자를 훔쳐봤던 일
남편의 등뒤에서 숨죽여 칼을 갈며 울었던 일
집만 나서면 어김없이
머리칼 바람에 풀어 헤쳤던 일
그것들이 위험한 혹으로 자란 것일까
하지만 떼내어야 할 것이 혹뿐이라면
나는 얼마나 가벼운가
끼니마다 칭얼대는 저 귀여운 혹들
내가 만든 여우와 토끼들
내친김에 혹 떼듯 떼어버리고
새로 슬며시 시집이나 가볼까
밤새 마음으로 마을을 판다
-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 (민음사, 2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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