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옥야沃野 2010. 12. 9. 10:22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 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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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시인)의 연애시 추억

 

 

누군가가 눈물나게 그리울때...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사랑 때문에 상처 받고 우는 사람에게 정호승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 처럼 깊은 위로가 있을까.

사랑으로 하여 외로운 사람에게 시인은 따뜻한 손바닥으로 등을 두둘겨 주며 이렇게 말한다.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당신의 사랑이, 당신의 연애가 당신을 외롭게 한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 그건 당신이 '사람'이기 때문이다.'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이다.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사람으로 '살아 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고.

 

만나고 돌아서는 그 순간부터 그리워지는 것이 사람의 사랑이고 연애다. 그런데도 사랑에는 언제나 외로움의 냄새가 난다. 그립다는 것, 누군가가 눈물이 나도록 그립다는 것, 그건 사람의 사랑이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다.

 

모바일로 하루에 수십 통의 사랑한다는 문자를 주고 받는다고 연애가 아니다.  전화로 밤새도록 사랑을 속삭인다고 연애가 아니다. 사랑의 이메일이 수백 통씩 쌓였다고 연애가 아니다. 편지지에 육필로 쓴 연애 편지를 받아보지 못했다면, 그런 연애 편지를 써보지 못했다면 당신의 연애는 불행하다.

 

디지털 시대, 초 고속 광(光)랜의 시대, 사랑이 식으면 문자도 전화도 오지 않는다.식지 않는 사랑은 없으니 시인은 경고 한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고.  더 이상 오지 않는 것들을 그리워하는 일  보다 외로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라고 권한다.

꽃밭에 노란 수선화가 피던 계절에 나는 마당에 놓인 나무의자에 앉아서 누군가의 전화를 간절히 기다렸다. 전화가 오지 않으면 불안했다. 단 한번도 전화벨이 울리지 않은채 날이 저물고 갈까마귀 떼가 오동나무 가지에 앉아 울면 산골의 밤이 그렇게 길 수 없었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자주 아팠던 시간, 나는 수선화를 보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가녀린 꽃대에 언밸런스하게 큰 꽃을 피운 수선화가 해바라기를 하는 것이었다. 뿌리는 땅에 박혀 있어 꼼짝달싹하지 못하지만 꽃은 하루 종일 해를 따라 돌고 도는 수선화의 사랑법을 보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꽃이 지면서까지, 진노랑 꽃잎이 퇴색되고 말라 바스라지면서까지 수선화의 해바라기는 멈추지 않았다. 꽃이 하는 사랑, 사람이 하는 사랑보다 위대 했다. 노란 수선화의 꽃말이 '사랑에 답하여' 였다. 사랑에 답하는 자세, 그건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아니 죽어서도 변하지 않는 고집스런 자세였다. 외로움에 이 악물고도 사랑에 대한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안 그 밤에 나만 사랑으로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시인은 수선화가 물가에 피어있는 일을 외로움 때문이라고 했다. 내 꽃밭에 노란 수선화도 그랬다. 해를 따라 도는 일, 누군가를 해바라기 하는 것도 외롭기 때문 이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는 것을 아는 시인은 이미 사랑의 외로움을 배워버린 사람이다. 연애에 실패한 사람은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지는 것'을 안다.

그러니, 당신도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정일근> -2007.10.29 조선일보 토요섹션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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