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꽃편지/김용택

옥야沃野 2012. 2. 17. 22:18

그리운 꽃편지 1


봄이어요.
바라보는 곳마다 꽃은 피어나며 갈 데 없이 나를 가둡니다.
숨막혀요. 내 몸 깊은 데까지 꽃빛이 파고들어 내 몸은 지금 떨려요.
나 혼자 견디기 힘들어요.
이러다가는 나도 몰래 나 혼자 쓸쓸히 꽃 피겠어요.
싫어요. 이런 날 나 혼자 꽃 피긴 죽어도 싫어요.
꽃 피기 전에 올 수 없다면 고개 들어 잠시 먼 산 보셔요. 꽃 피어나지요.
꽃 보며 스치는 그 많은 생각 중에서 제 생각에 머무셔요.
머무는 그곳, 그 순간에 내가 꽃 피겠어요.
꽃들이 나를 가둬, 갈 수 없어 꽃그늘 아래 앉아 그리운 편지 씁니다.
소식 주셔요.

 

 

그리운 꽃편지 2


꽃이 핍니다
꽃이 피면 기쁩니다
꽃이 집니다
꽃이 지면 슬픕니다
꽃이 피면
당신이 금방 올 것 같고
꽃이 지면
당신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이 이렇게
꽃 피고 지는 것에 따라 변하는 것은
꽃 피고 지는 그 사이에
당신의 반짝이는 여러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꽃 피고 지는
그대와 나의 멀고 먼 거리
이 한반도의 허리는
어디나 밟으면 터질
지뢰밭 길입니다.

 

 

 

그리운 꽃편지 3


바람 부는 날은 저물어 강변에 갔습니다.
바람 없는 날도 저물어 강변에 갔습니다.
바람 부는 날은 풀잎처럼 길게 쓰러져 북쪽으로 전부 울고,
바람 없는 날은 풀잎처럼 길게 서서 북쪽으로 전부 울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들 사이에 강물은 얼마나 흘러가고
꽃잎은 얼마나 졌는지요.
오늘은 강에 가지 않고 마루에 서서
코피처럼 떨어진 붉은 꽃잎을 실어가는 강물을 보며
그대 있는 북쪽으로 전부 웁니다.
전부 웁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철지붕에 대하여/ 안도현  (0) 2012.02.23
별하나/ 김용택  (0) 2012.02.17
꽃을 보고 오렴/ 이해인  (0) 2012.01.23
어떤 결심   (0) 2012.01.17
겨울연가/ 이해인  (0) 2012.01.08